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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적 관점으로 보는 올리브 산(Olive Mt) 의미와 이스라엘 역사의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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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01-15 14:46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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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적 관점으로 보는 올리브 산[마할렛 핫제팀]

감람 산은 히브리어로 “마알레핫제팀”이라고 하는데 예루살렘 동쪽 높은 구릉으로 성경에서는 삼하15:30에는 ‘다윗이 예배드리던 산', 왕상11:7에는’예루살렘 동쪽 언덕', 겔11:23에는 '성의 동쪽 산', 왕하23:13에는‘멸망의 산’, 눅19;29,21:37,행1:12에는 ‘올리브 산’, 느8:15에는 단순히 ‘산’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아랍어로는 '예벨 엣 루트' 즉 '주요한 산<성산>'이라고 한다. 히브리어로 표현된 '마알레'이란 표현은 '산'이라기 보다는 '산지'라는 의미가 더 강하다.

'산'이라는 의미를 갖는 히브리어 단어는 '하르'가 있는데 봉우리는 모두 3개다. 전망산, A-tur, 그리고 멸망산이다. 전망산은 해발 826m으로 가장 높다. 중간 봉우리인 A-Tur는 해발 818m이며 남쪽에는 멸망산으로 해발 747m를 자랑한다.

올리브 산은 초크 돌로 이루어져 있어서 물 빠짐이 좋다. 덕분에 올리브 나무 재배에 적합하다. 또한 초크 돌은 단단하지 않아 건물을 짓는데에는 적합하지 않다. 하지만 쉽게 채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돌무덤이 많다.

성경시대부터 지금까지 유대인들은 올리브 산에 묻히는 것을 최고로 여겼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최고의 명당인 셈이다. 따라서 올리브 산과 예루살렘 성 사이에 있는 기드론 골짜기에는 무덤들이 많다. 그 중에는 압살롬, 여호사밧, 스가랴, 바로 딸, 선지자 학개, 선지자 말라기의 무덤들이 있다.

특별히 성경에는 감람산 산에서 일어난 사건을 열거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다윗 왕이 압살롬의 반란을 피해 도망칠 때 이 산을 넘었다(삼하15:30). 솔로몬은 이 산에 산당을 지었다(왕상 11:7). 그리고 요아스는 솔로몬이 지은 산당을 파괴했다(왕하23:14).

올리브 산은 예수님의 지상 공생애 중, 최후의 일주일과 극히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게다가 부활하신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 제자들과 만났던 장소이기도 하다.

이 산의 이름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기사에도 등장한다.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은 올리브 산 동쪽에 있는 '베다니 동네'에서 출발하여 '벳바게'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입성했다.

많은 고고학자들은 '벳바게'를 '카푸르 엣 투르'라고 추정한다. 거기서 군중들은 예수님을 향하여 ‘호산나’라고 외치면서 예루살렘 입성을 환영하였던 내리막길이 있다(눅19:37). 당시 예수님께서 이 산을 넘어 예루살렘의 성과 헤롯 성전을 보시고 예루살렘 성을 위하여 우셨다(눅19:41~44).

이는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슥14:1~5)이 성취된 것이나 것이나 다름이 없다. 또한 예수님은 여기서 예루살렘 멸망과 이 세상 끝날(end time)을 예언하셨다(마24:3).

예수님은 마지막 유월절을 보낸 후, 다시 올리브 산으로 들어가신다(마26:30). 그리고 예수님은 체포 전 일주일 동안 낮에는 성전에서 보내시고, 밤에는 올리브 산에서 보내셨다.

올리브 산에는 주님께서 못 박혀 죽기 전에 제자들을 가르치시고, 승천하는 날 아침 그들과 회합한 장소로 여겨지고 있는 작은 동굴이 있다. 주후325년에 이곳에 교회가 세워졌다. 그러나 주후614년 페르시아군에 의하여 파괴 되었다. 그 후, 그 터의 일부가 발굴되어 '엘로나 교회'가 세워져 있는데 한국에서는 이를 '주기도문 교회'라고 한다.

주후375년 올리브 산 언덕인 '에벨 엣 투르'에 예수님이 승천한 장소로 추정되는 곳에 팔각형의 교회를 세웠다. 나중에 이 교회는 무슬림에 의하여 파괴되었으나 십자군의 손에 의해 재건되었다. 그리고 13세기 이슬람교도의 손에 들어갔다가 오늘날에는 팔각형의 기초부와 중앙 성당 외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지금 승천 회당 안에 바위가 있는데 이곳이 예수님이 승천한 장소라고 한다. 물론 정확한 것은 아니나 상징성 때문에 많은 기독교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산기슭에는 '겟세마네'라는 '고뇌의 교회'가 있는데 이를 '만국교회'라 한다. 이곳을 발굴한 결과, 두 개의 교회가 부분적으로 겹쳐져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아래쪽의 낡은 교회는 4세기 때에 세워진 것으로 예수께서 기도한 장소다. 근처에는 겟세마네 동굴이 있다.

올리브 산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전망산은 제1차 유대 독립전쟁 때인 70년 로마 장군 티투스가 예루살렘을 파악하기 위해 관측하고 진지를 구축한 곳이다. 특히 이곳은 2차 성전시대 당시 새로운 달의 시작을 알리는 장소로 이용하였다. 주후 70년 로마에 의하여 성전이 파괴된 후, 유대인들은 '장막절'을 이곳 올리브 산에서 행하였다. 이곳이 성전 산 보다 높이가 80m가 높고 또한 성전의 모습을 잘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은 또한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었던 아브월 9일에 유대인들이 모여 성전파괴에 대한 슬픈 기도를 하는 장소가 되었다. 1481년 유대인 순례객들이 아브 월 9일 시온 산에 올라 금식과 애통을 하며 여호사밧 골짜기를 통하여 올리브 산에 올라 성전 산을 바라보면서 성전의 무너짐을 슬퍼하며 눈물을 흘렸다는 기록이 있다. 1850년대 중반에 유대인들은 실완 주민들에게 매 해 100프랑을 주면서 그곳의 무덤을 파괴되는 것을 막았다고 한다.

전망산이 있는 곳에 유대인의 전승에 의한 ‘정한 처소’라고 한다. 겔43:21“그 속제 제물의 수송아지를 가져다가 성전의 정한 처소 곧 성소 밖에서 불사를지며”라는 구절에서 언급하고 있다. 하나님께 드리는 분향 제물은 아무데서는 태워버릴 수는 없다. 정한 장소에서 태우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에스겔은 그의 책인 겔43:21에서 '성소 밖에서 태운다'고 했다. 결국 이 말은 올리븐 산에 성소가 있었다는 증거다.

또한 유대인들의 전승에 따르면 올리븐 산 정상에 아담의 무덤이 있고 한다. 성경 시대 때 올리브 산과 베다니 경계에서 많은 제사장들이 살며 그곳에서 하나님께 경배하고 제사를 드렸다. 대상9:14~16에는 레위지파의 제사장들이 예루살렘 근교에서 거주한 것을 언급하고 있다. 따라서 그곳을 ‘정화의 장소’라고 불렀던 것으로 추정이 가능하다.

고대 왕국 시절 백성들은 베다니를 지나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갔었다. 당시 예루살렘은 거룩한 도성이다. 거룩한 성에 아무나 들어갈 수가 없어 정화를 하여야 한다.

감람산 정상에 있는 정화의 장소에서 제사장들에 의해 '정결례' 즉 '미크바'에서 정결의식을 행하고 자신을 거룩하게 하여야만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가 있다. 제사장들은 율법의 규례에 따라 성전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거룩하게 되었는지 점검하고 들어가는 사람의 숫자를 셌다. 사람의 머리를 세는 것을 히브리어로 ‘골골레트’라고 한다. 즉 '해골'이다. 왕하9:35에 이를 ‘두골’이라고 번역하고, 이를 아람어로 음역한 것이 ‘골고다’다.

삼하15:32절 “다윗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마루턱에 이를 때에 아렉 사람 후새가 옷을 찢고 흙을 머리에 덮어쓰고 다윗을 맞으러 온지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다윗 왕이 압살롬의 난을 피하여 예루살렘을 탈출할 때 바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마루턱에서 후새를 만났다. 이 말은 올리브 산 정상에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제단이 있었다는 또 다른 증거다. 물론 고고학적 증거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왕상11:7~8절에는 “모압의 가증한 그모스를 위하여 예루살렘 앞 산에 산당을 지었고 또 암몬 자손의 가증한 몰록을 위하여 그와 같이 하였으며 저가 또 이족 후비들을 위하여 다 그와 같이 한지라 저희가 자기의 신들에게 그 분향하며 제사하였더라.”라고 했다. 이는 다윗에 이어 이스라엘의 왕이 된 솔로몬이 이방 여인 후비들을 위하여 올리브 산에 산당을 만들어 이방신에게 제사 드렸다는 기록이다. 이곳이 바로 '멸망산'이다.

그리고 남 왕국 요시아왕은 종교 개혁을 통하여 올리브 산의 제단을 혁파하였는데 그 내용에 산당이 나온다. 왕하23:13~14에는 “또 예루살렘 앞 멸망 산 우편에 세운 산당을 더럽게 하였으니 이는 옛적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시돈 사람의 가증한 아스다롯과 모압 사람의 가중한 그모스와 암몬 자손의 가중한 밀곰을 위하여 세웠던 것이며 왕이 또 석상들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들을 찍고 사람의 해골로 그 곳을 채웠더라.” 라고 했다. 즉 그곳을 해골로 채웠기 때문에 '골골레타'라고 불렀다.하지만 이곳을 '멸망산의 우편'이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멸망산과 전혀 다른 곳을 이야기 하고 있다.

민10:1-10에는 '붉은 암송아지'를 불살라 재로 만들고 몸을 물로 씻는 의식이 있다고 했다. 랍비들은 이 의식이 산당의 동쪽 문을 바라보는 올리브 산에서 행하였다고 추정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은 구약의 말씀을 이루려는 하나님의 계획과 성취다. 마27:28절에는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라고 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는 형을 받았을 때, 사람들은 홍포를 왕이라고 비웃으면서 예수님께 홍포를 입혔다. 그 이유가 뭘까?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은 단지 예수를 비웃은 것에 불과하지만 사실은 그게 구약의 말씀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예수를 예표하는 붉은 암송아지가 완전히 붉은 색이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속죄일에 염소의 뿔에 붉은 천을 묶었다. 이런 것들이 모두 예슈아를 통해 성취된 것을 의미한다.

보통 붉은 암송아지를 언제 죽이나? 유월절 바로 직전, 진 밖인 올리브 산 성문 밖에서 붉은 암송아지를 죽였다. 예수가 십자가에 돌아가신 곳 역시 이곳이다. 결국 예수의 죽음이 구약의 말씀을 성취하고 있다는 증거인 셈이다. 예수는 하늘의 성전에서 속죄제물이기도 하고 또한, 집행자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예수가 돌아가신 곳을 '골고다' 혹은 '갈보리'라고 부른다.

히13:10-13절은 이 부분을 명확하게 해석하고 있다. “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은 그 제단에서 먹을 권한이 없나니 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라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이는 정확하게 예수께서 어디서 돌아가셨는지를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올리브 산은 성경에서 다양하게 불렸다. '성문 밖', '진 밖, '성결한 곳', '속죄의 산',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던 산' 등으로 불리웠다.

미쉬나(Mishnah in Moddoth 2:4)에 따르면 [성전의 기둥들은 동문을 제외하고 아주 높았다. 붉은 암송아지를 태우던 제사장이 올리브 산위에서 직접 성소의 입구를 바라 볼 수 있었다]. 미쉬나 역시 올리브 산에서 성전이 보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성전 시대에는 성전의 동쪽문인 수사문과 올리브 산 사이에 다리가 놓여져 있었다. 즉 제사장들은 기드론 골짜기를 건너지 않고 이 다리를 사용하였다. 베다니에서 감람산을 건너 성전에 갈 때에는 이 다리를 지나간 것이다. 이 다리 끝에 여호와께 경배하는 제단이 있었다고 한다. 거기가 바로 정한 처소이고 메시야를 상징하는 속죄 제물을 잡았던 곳이다. 다윗이 바로 압살롬에 쫓겨서 도달한 곳이 바로 그 곳일 가능성 또한 높다.

마27:50~53,54절에서 마태는 이렇게 전하고 있다.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찟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일어난 일들을 보고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더라 하더라”

그들은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로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는 것을 보았다. 예루살렘 성 또는 기드론 골짜기 그 어디에서도 성전 안을 볼 수가 없다. 성소의 문 높이가 무려 8층 높이 정도 될 정도로 거대했기 때문이다. 물론 성소의 문은 항상 열어놓기 때문에 멀리서도 볼 수 있다. 그곳을 볼 수 있는 곳은 방향이 성소를 기준으로 동쪽에 있는 올리브 산쪽 뿐이다. 그리고 올리브 산에서도 정상에서만 볼 수 있다. 따라서 예수님이 숨을 거두실 때 휘장이 찟어지는 것을 보았다는 것은 그 장소가 지금의 성묘교회 자리가 아닌 올리브 산 정상일 가능성이 있다.

1948년 아랍-이스라엘 전쟁으로 인해 요르단과 1949년 4월3일 아르미스티스 협정을 맺었다. 그 내용은 유대인들을 올리브 산의 무덤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협정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 후, 기독교인들은 이곳을 자유롭게 출입하는 것이 허용되었다. 하지만 유대인들에게는 출입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리고 1949년 말에 올리브 산에 살고 있는 요르단 사람들이 올리브 산에 있는 무덤들을 밀어버리고 그곳에 경작지와 왕의 별장을 지었다. 그때 파괴되었던 무덤이 약38,000개나 달한다. 요르단 국왕이 인터콘티넨탈 예루살렘 호텔을 건설하기 위하여 1차 성전시기의 무덤들을 파괴한 것이다.

그나마 다행한 것은 1967년 6일 전쟁 때, 이곳을 탈환한 이스라엘은 유대인 무덤들을 다시 정비하여 유대인들에게 개방하였다. 그리고 이스라엘은1980년 동예루살렘을 일방적으로 합병해버렸다. 이 일로 이스라엘은 국제적인 비난을 받았지만 그것을 감수한 것은 다시는 조상들의 무덤을 훼손시키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을 보여준 것이었다.

자료제공 - 김용규 이스라엘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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