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의 토라 ‘레크레카’ 해석 / 사 40 : 27 – 41 : 16 / 위로하라 위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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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9-11-13 12:30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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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로하라 위로하라
하나님은 아담과 노아,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약속하셨다. 그 축복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들 후손이 번성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그들의 삶은 엉망진창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 이사야가 증언하는 것이 그것이다. 사40:2절에는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다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그들은 분명 아담의 후손이요, 축복을 약속 받은 노아의 후손이요, 아브라함의 후손일 텐데 말이다. 이사야 선지자가 말하는 것은 딱 한 가지다. 18절 이후에 그가 말하는 것은 우상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우상의 실체가 무엇인지 아주 구체적으로 말한다. 구상은 장인이 부어 만든 것이요, 장색이 금으로 입혔고 은 사슬로 만든 것이란다. 그것들은 듣지도 못하는 무능력자라는 것이다.
반면 하나님은 땅 끝까지 창조하시고,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고, 무능한 자에게 힘을 더하신다는 것이다.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나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어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 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 하여도 곤비하지 않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무슨 말이냐? 우상 때문에 이런 하나님을 피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것은 어리석다는 것이요, 이스라엘이 우상 때문에 망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따르라는 것이다. 아브람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면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된다는 것이니 그 축복을 얻으라는 것이다.
사41장에는 그들을 괴롭히는 열국이 어떻게 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비록 그들이 이스라엘을 괴롭히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것이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돌아오기만 하면 두려울 것이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도우실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현실이 두렵다면 가장 먼저 생각할 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떠났는지를 돌이켜 보는 것이다. 인생에는 고난이 있다. 그리고 그 고난에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그것을 환경에서 찾으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비록 자신에게 문제가 없을지라도 축복엔 반드시 과정이라는 것이 있다. 그것은 곧 내가 언약을 지키고 있느냐는 시험대인 까닭이다. 그게 믿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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