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거부하고, 기회를 잃어버린 사마리아인들/눅9:51-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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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9-04-16 19:37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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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거부하는 사마리아 사람들의 이야기!
|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신 예수님
복음서에는 예수님의 행보를 암시하는 구절을 흔히 찾을 수 있다. 그의 행보는 단순히 기적을 일으키는 것만이 아닌 구원사역에 꼭 필요한 것들이기에 복음서는 어느 것 하나 소홀하게 다루지 않았다.
누가 역시 자신의 책인 누가복음 9:51절에서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라는 말로 예수님의 불안한 행적을 감추지 않고 있다. 또한 누가는 당시 예수님의 심리를 이렇게 분석하고 있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여기서 굳게 결심하셨다는 것은 이번 예루살렘 행을 결정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만큼 예수님의 인간적으로 연약한 심리를 부각시키고 있다.
이상한 것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행(行)을 결정하시면서 굳이 사마리아를 거쳐 가시려고 한 것이 걸린다. 예수님은 사자들을 사마리아에 먼저 보내 그의 최후를 준비하게 하셨다. 사마리아는 원래 북이스라엘의 땅에 속했던 곳으로, 당시 유대인과 사마리아는 서로 왕래를 하지 않을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를 찾으신 것은 당시로서는 꽤나 큰 파격적인 행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 사마리아에서 보내시려 한 것은 그들에게 뭔가 기회를 주시려는 의도가 충분하다.
아이러니 한 것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유는 한 가지다. 예수께서 그들을 거쳐 예루살렘으로 가시기 때문이라는 것이 누가의 증언이다.
이때 아주 재미있는 장면이 있다. 54절에는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이르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한 마디로 사마리아 사람이 예수님을 거부하는 것에 제자들이 화가 나 혼찌검을 내주자는 뜻이다.
이상한 것은 이런 말을 한 사람이 베드로가 아닌 야고보와 요한이 했다는 것이다. 원래 이들은 이렇게 과격한 사람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런 말을 한 것은 왜일까? 답은 그 다음 구절에 나온다.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을 꾸짖으시고 다른 마을로 떠났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 유명한 ‘나를 따르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요약하면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만사를 제쳐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느니, 심지어 가족까지 버려야 가능하다는 것 등이다.
이 구절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 예수님 믿고, 부름 받으면 모든 것을 다 버려야 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이 세상 것들은 다 가치가 없다는 것인지 헷갈린다. 하지만 앞의 토라 레위기에서 나병환자 이야기와 왕하9장에서 네 명의 문둥병자 이야기 를 이해했다면 해석이 어렵지 않다.
여기서는 병자가 치유 받거나 예수님을 따를 때의 자세 등에 관한 것이 아니다. 왕하9장에서 네 명의 환자들이 사마리아 성안에 아람 군대가 후퇴했다는 소식, ‘아름다운 소식’을 전했다. 그 소식 때문에 이스라엘은 포위된 성안에서 나올 수 있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의 한 마을을 찾으신 것은 그들에게 기회나 다름이 없다. 예수님의 최후를 준비할 수 있는 영광뿐만 아니라 마지막으로 그들이 구원받을 수 있는 ‘아름다운 소식’인 구원의 복음을 접할 수 있는 기회의 순간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의 마을에서 머무시는 것을 거부했다. 그것으로 그들의 욕된 삶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다.
죄를 대속 받지 않고, 구원받지 못하는 한, 그는 영적으로 나병환자나 다름이 없다. 그의 환부가 나았는지에 대한 제사장의 진찰을 받지 않는 한, 설사 그의 환부가 나병이 나았더라도 제사를 드리지 않는 한, 그는 영원한 저주의 병인 나병을 달고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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