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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의 해석-토라포션 출애굽기 18장 '이트로(Yit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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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9-01-29 12:01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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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의 해석-토라포션 출애굽기 18장 '이트로(Yitro)'

▣ 선지서의 토라해석, 하프타라 / 사6:1–7:6, 9:6-7

▶ 하나님의 영광을 목격한 이사야와 그의 태도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일을 어떻게 진행하실까?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하나님께서 직접 챙기시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매번 이렇게 하면 큰 일이 난다. 특별히 사람들이 할 일이 없어지는 까닭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아닌 사람을 중간에 세우신다. 앞의 토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출애굽에서 기적을 행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셨지만 그 기적을 일으키는 중간 역할은 모세가 맡았다. 또한 출애굽 후, 이스라엘을 인도한 것 역시 모세를 앞세우셨다. 물론 그 뒤에는 하나님이 계셨다.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셨다.

이번 하프타라에는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부르시는 장면을 보도하고 있다. 때는 남유다, 웃시야 왕이 죽던 해였다. 참고로 웃시야에 대해서는 열왕기하 26장에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요약하면 이렇다. 웃시야는 유다 10대 왕으로 나이 16세에 왕이 되었다. 그의 통치 기간은 52년간으로 남북을 합쳐 가장 길다. 그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했으며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 그러나 나라가 부강해지고 평안해지자 교만해졌다. 제사장만이 행할 수 있는 분향을 하다가 여호와의 저주를 받아 나병에 걸렸다. 그 후, 웃시야는 여생을 별궁에서 홀로 지내다가 죽었으나 조상의 묘실에 묻히지 못했다.

웃시야가 죽던 해, 1절에는 이사야는 하나님의 영광을 목격하는 장면을 언급하고 있다. 그 장면은 장관이다.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시고, 그의 옷자락이 성전에 가득했다. 그 주변에는 스랍들이 모시고 서 있다. 스랍들의 모습은 기괴할 정도로 무섭다. 각기 여섯 날개가 있다. 둘로는 얼굴을 가리고, 둘로는 발을 가리고, 둘로는 날았다는 것이다. 스랍들은 서로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를 외쳤다. 이는 마치 왕이 왕좌에 앉아 있는 모습과 같다. 영락없이 왕의 주변에 무장한 군사들이 왕을 보호하고, 왕의 등장, 즉 ‘주상전하 납시오’라고 외치는 모습이다.

이사야는 그 등장을 보면서 자신의 죄를 고백했다.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 보았으니 살 수 없다는 고백이다. 그때 스랍 중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핀 숯을 그의 입술에 대며 죄를 사했다. 하나님은 그를 겨냥한 듯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갈꼬’ 물으셨다. 하나님의 일을 맡기려고 하는 데 깨끗한 사람, 즉 거룩한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이사야는 그 물음에 망설이지 않고 자신을 내세웠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말이다.

▶ 그루터기의 해석

이 구절은 소위 하나님께서 자신의 종인 소명자를 부르신다는 뜻으로 해석하곤 한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부르셨으며 자신 역시 그 부름에 응했다는 식이다. 그렇게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 신학을 하고, 사역지에 나선다. 세상 곳곳에 그들 덕분에 교회가 넘치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룰 정도다.

그런데 세상은 악하다. 이전 보다 더 악하다. 왜 그럴까? 부르심, 즉 하나님의 소명만 강조했지 하나님께서 부르신 사람이 누구며, 적어도 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간과한 까닭이다. 답은 이사야가 하나님의 영광과 부딪힌 장면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먼저 자신의 부정을 고백했다. 두 번째는 그의 고백에 대한 죄사함이 있었다. 세 번째는 그가 할 일이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거룩하게 하는 것이었다.

9절에는 이사야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알게 한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세상에 교회가 너무 많다. 기독교인도 너무 많다. 목사들 역시 너무 많다. 양적으로 모든 것이 풍부하다. 이게 하나님께서 원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은 10절에서 확인 할 수 있다. 이사야 선지자가 아무리 하님의 말씀인 토라를 전해도 이 백성은 마음이 둔해, 귀가 막히고 눈이 감겨 토라를 듣지 않고 깨닫지 못하리라는 것이다. 덕분에 남은 사람이라고 해봐야 이스라엘이 황폐해지고, 그 중 십분의 일에 불과하리라는 것이다. 마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한 그루터기만 남아 있는 것처럼 되리라는 것이다.

웃시야의 아들은 요담이다. 그런데 이사야 7장은 웃시야 왕이 죽고 난 후, 요담의 이야기가 아닌 웃시야의 손자인 아하스 왕을 소개하고 있다. 왕의 기록은 열왕기에 있어 이사야서에는 굳이 요담에 대한 이야기를 생략한 듯하다. 대신 토라를 이어가는 데 더 중점을 두는 것 같다.

남유다에는 겨우 그루터기처럼 소수만이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는 것이었다. 7장 역시 앞장인 6장의 그루터기라는 단어를 반복하고 있다. 내용은 물론 전혀 다르다. 앞에 그루터기가 남아 있는 소수를 가리키는 반면, 7장의 그루터기는 멸망을 상징한다. 즉 아하스 왕 때 아람의 르신 왕과 이스라엘의 베가 왕이 동맹하여 예루살렘을 쳤으나 이기지 못했다는 소식이다.

그 때 아하스 왕과 그의 백성이 두려워하여 마음이 흔들렸으나 여호와께서 그 동맹을 두려워하지 말 것을 말씀하셨다. 오히려 그들은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 두려워하거나 낙심하지 말라는 것이다.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아람과 이스라엘의 동맹을 직접 깨뜨리시겠다는 뜻인 셈이다.

앞장 선 자는 하나님의 종이다. 따라서 그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을 앞세우는 자다. 그러니 굳이 하나님의 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할 필요 없다. 그가 할 일은 거룩을 유지하는 것이요, 거룩할 것을 백성에게 말하는 것으로 대신 할 수 있다. 성공과 실패는 바로 그 거룩에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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