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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라포션 바에트하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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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08-09 19:32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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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3 : 23 – 7 : 11, 바에트하난 Va’etchanan (ואתחנן)-간구하기를

토라포션 : 신 3 : 23 – 7 : 11/ 사 40 : 1 – 26 / 마 23 : 31 – 39 / 막 12 : 28 – 34

▣ 신 3 : 23 – 7 : 11

1. 모세, 떨기나무에서 하나님을 체험하다

모세의 운명은 파란만장 했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평범하지 않았다. 그는 부모가 아닌 남의 손에서 자랐다. 비록 그가 애굽의 왕궁에서 공주의 아들로 살기는 했지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겪은 것이 분명하다. 그것은 그가 이스라엘 사람을 괴롭히는 애굽인을 죽인 것으로 확인 할 수 있다. 그가 정말 애굽의 왕자로 확실하게 자리매김을 했다면 그는 굳이 도망자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애굽인을 살인하고 도망치던 때는 그의 나이 40세였다. 그 이후, 그는 이전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아야 했다. 그는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동안 양을 치며 살았다. 광야는 왕궁과 환경이 완전히 달랐다. 한 사람의 삶이 너무 극과 극의 모습이었다. 마치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인생을 사는 것과 같았다.

그런 그에게 딱히 소망은 없어 보인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운명이 바뀌는 기회가 왔다. 마침 호렙산 근방에서 양을 치던 그가 저 멀리 떨기나무에서 불 붙는 광경을 목격했다. 떨기나무란 말만 그렇지 실제로는 나무가 아니다. 덕분에 탈 것이 없다. 설사 불이 붙었다고 하더라도 순식간에 타버리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불이 꺼지지 않은 채 계속 타고 있었으니 아마 이상했을 것이다.

모세가 그러려니 하고 넘어 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그는 미디안 광야의 목동으로 살았을지 모른다. 아무튼 그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그 광경을 보기 위해 호렙산 가까이 갔다.

바로 거기서 그는 하나님을 체험했다. 출3:4-6엔 그 장면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야훼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매”.

이때까지만 해도 모세는 하나님에 대해서 말만 들었을 것이다. 그런 모세가 처음으로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체험 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경우는 모세만이 아니었다. 야곱도 그랬다.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여호와는 조상의 하나님에 불과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운운하는 것이 바로 그런 뜻이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체험하는 과정이 없이는 그저 부모가 믿는 하나님, 말로만 듣는 하나님에 불과하다.

덕분에 하나님을 왜 믿어야 하는지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없다. 특히 청소년 같은 경우엔 그 정도가 더 심하다. 인격적인 체험이 없이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없다. 그런 의심은 정당한 것이다. 따라서 그것을 탓할 수 없다.

모세 역시 마찬가지다. 그가 불붙는 떨기나무를 매개로 한 하나님과의 만남이 없었다면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하는 데 나설 수 없었을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당시 그에게는 여러 가지 제약이 있었다. 그는 애굽에서 살인하고 도망친 도망자였다. 심지어 이미 그의 나이 80세다.

그의 환경만을 따지면 출애굽은 불가능한 것이 분명하다. 더욱이 그가 이스라엘을 출애굽 해야 하는 어떤 이유도 명분도 없다. 이는 그가 자기가 누구관대 출애굽 해야 하는 지를 물었던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2. 모세의 간구(바에트하난)

이스라엘이 우여곡절 끝에 출애굽을 했지만 이후, 그들의 노정은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산 넘고, 물 건너, 광야를 지나는 과정을 숱하게 거쳐야 했다. 그리고 겨우 목적지에 도착했다.

과정은 힘겨웠지만 목적지를 목전에 둔 상황에서 나름 성취감을 느낄 법 하다. 그러나 정작 모세 그 자신은 요단을 건널 수 없다. 말로만 듣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 가나안을 눈 앞에 두었지만 그 땅에 입성할 수 없다는 것이 그 개인으로서는 참담했을 것이다.

그가 이 상황을 얼마나 극복하고 싶었는지에 대한 그의 심리를 잘 표현한 구절이 있다. 그게 바로 오늘 토라 포션의 핵심 단어인 ‘바에트하난’이다. 뜻은 ‘간구했다’는 것이다. 간구했다는 이 단어에 모세의 심정이 그대로 녹아 있다.

그가 간구한 것이 대체 뭘까? 25절엔 ‘구하옵나니 나를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쪽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 하되’ 한 마디로 자신도 요단을 건너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보고 싶다는 것이다. 당연하다.

그러나 야훼 하나님은 그의 요구를 단호하게 거절하셨다. 26절엔 모세의 요구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여호와는 분노하셨다, 그의 요구를 듣지 않으셨다. 이 일로 다시는 말하지 말라고 딱 잘라 거절하셨다. 27절엔 그는 요단을 건너지 못한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대신 모세는 여호수아를 담대하게 하라는 말씀만 들었다.

모세의 요구에 하나님께서 거절하신 것은 너무 매정한 처사임에 틀림없다. 물론 그 역시 실수는 했지만 그의 실수는 자신이 아닌 이스라엘 백성들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한 번 봐줄 법도 한데 여호와께서는 냉정하게 그를 거절하셨다.

만약 이런 상황에 우리가 처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아마 대부분은 상실감을 느꼈을 것이 분명하다. 아마 그 이상의 감정을 느꼈을 것이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그 부분에 대해서 뚜렷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 가나안이 이스라엘 백성이 궁극적으로 나가야 할 목적지라면, 거기서 모세가 배제되었다는 이 사실을 통해서 토라는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비록 구원이 우리 눈 앞에 있지만 우리 역시 어떤 순간에든지 배제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바란다.

3. 또 다시 반복하는 규례들

지금 이스라엘은 중요한 순간에 처해 있다. 그들의 지도자인 모세는 곧 그들을 떠나야 할 때가 멀지 않았다. 물론 모세를 대신할 새로운 후계자인 여호수아가 있다. 하지만 그는 아직 검증된 사람이 아니다. 더욱이 그들은 아직 가나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 불안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모세는 4장에서 또 다시 이스라엘이 지켜야 할 규례들을 언급하고 있다. 지금까지 대체 얼마나 많이, 자주 이 규례들에 대한 것을 이스라엘이 들어야 하는 것일까? 그게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이기는 하나, 때로는 지겨웠을 법 하다. 아무튼 1절엔 이런다.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게 되리라’

모세는 이 상황에서 왜 굳이 규례를 전하는 것일까? 딱 한 마디로 규례와 법도는 이스라엘 생존과 직결되어 있는 까닭이다. 특이한 것은 모세가 이 규례를 언급하면서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 운운한했다. 한 마디로 지키라는 것이다.

즉 이스라엘이 이것들을 잘 지키는 한, 가나안에서의 살 길이 열린다는 것이다. 이런 말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거의 이 부분에 대해서 입버릇처럼 말한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이것을 단순히 영적으로만 받아들이기에는 애매모호하다. 토라는 영적이기는 하지만 오히려 현실에 가깝다. 이에 대한 답은 6절에 있다. 규례를 지켜 행하는 것이 지혜요, 지식이라는 것이다. 또한 그들이 차지할 땅의 원주민들이 그 지혜와 지식 때문에 탄복하리라는 것이다.

규례를 지키는 것은 어렵다. 이는 선민인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찬가지다. 아니나 다를까? 모세는 그것을 염려하고 있다. 9절에는 규례를 지키기 위해서 필요한 네 가지를 언급하고 있다. 첫째, ‘오직 너는 스스로 삼가며 네 마음을 힘써 지키라’는 것이다. 둘째, “네가 눈으로 본 그 일을 잊어버리지 말라‘는 것이다. 셋째, ‘네가 생존하는 날 동안에 그 일들이 네 마음에서 떠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너는 그 일들을 네 아들들과 네 손자들에게 알게 하라’는 것이다. 한 마디로 이스라엘 백성 모두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라는 뜻이다. 그것만이 그들이 살 길이라는 것이다.

당연하다. 그들이 지금까지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이 모두 하나님 덕분이었으니 말이다. 출애굽, 광야 살이 40년, 그리고 앞으로 있을 가나안 정복 등등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어느 것 한 가지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과거를 따져 봐라. 자신이 거쳐 온 과정을 되새기는 순간,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었던 때와 그렇지 않았던 때를 비교하는 것으로 쉽게 확인 할 수 있다. 언제가 가장 좋았었는지, 어느 순간이 고통스러웠었는지를 말이다.

4. 우상을 섬기지 말라

우상은 이스라엘을 가장 괴롭히는 것들 가운데 하나였다. 대체 우상이 뭐기에 하나님의 선민이요, 하나님의 백성들이 헤어 나오지 못한 것일까? 우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간단한 것이 아니다.

15절 이하엔 어떤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라라고 했다. 여기서 ‘형상’이란 단어는 15절에서 1회, 16절에서 4회, 17절에서 2회, 18절에서 2회, 23절에서 1회, 25절에서 1회 등장한다. 전체 11회나 된다. 여기서 ‘형상’이란 단어를 세 가지로 기록하고 있다. 16절엔 형상이란 단어를 각기 ‘타브니트(likeness)‘, ’싸멜(????????ל figure)‘, ’테무나트(????מ????????ת similitude)라고 했다. 뜻은 거의 비슷하다. 굳이 나누자면 ‘타브니트’란 '유사성', '닮음'이란 뜻이요, ‘싸멜’은 ‘조각상’을 의미한다. ‘테무나트(????ה????????מ)’는 ‘종류’란 뜻의 ‘민’과 같은 어원을 가지며 ‘비슷한 것’, ‘모양’, ‘유사’란 뜻이다. 한 마디로 ‘형상’이란 ‘어떤 형상과 유사하게 혹은 닮게 만든다’는 뜻이다. 이는 하나님을 어떤 형상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경계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게 하려는 인간의 시도는 단 한 순간도 끊어진 적이 없다.

그 이유가 뭘까? 굳이 말하자면 사람들 심리가 눈으로 보지 않고서는 직성이 풀리지 않는 까닭이다.

그러나 우상은 실체가 아닌 ‘형상’일 뿐이다. 덕분에 우상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28절엔 사람의 손으로 만든 우상은 보지도 못하며, 듣지도 못하며, 먹지도 못하며, 냄새도 맡지 못한다고 했다. 한 마디로 우상은 능력이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우상을 섬기는 대신 29절엔 하나님 여호와를 찾되,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찾으라는 것이요, 그러면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아직 가나안에 도착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왜 이렇게 지레 짐작을 하면서까지 염려를 하는 것일까? 모세는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태를 잘 알고 있다. 따라서 그들이 가나안 땅에 도착한 이후, 규례를 지키지 않을 것과 우상에 빠져 하나님을 배반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5. 이스라엘이 지켜야 할 것들

이스라엘이 지켜야 할 것들은 이것들만이 아니다. 모세는 계속해서 이스라엘이 십계명을 지킬 것을 언급하고 있다. 그게 5장의 이야기다. 그리고 6장은 앞의 내용과 반복되는 내용으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규례와 법도에 관한 것으로 이스라엘이 강을 건너가서 반드시 지켜야 할 지침이다.

십계명은 율법의 핵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그것을 어겼다. 십계명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확인하자. 7절 이하에 있다.

◎ 십계명 참고하기 ◎

1.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지니라’

2. ‘너는 자기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밑 물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3.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4.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

5.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6. ‘살인하지 말지니라’

7. ‘간음하지 말지니라’

8. ‘도둑질 하지 말지니라’

9.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

10. ‘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집이나 그의 밭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네 이웃의 모든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

우리 역시 십계명을 잊고 살았음을 인정해야 한다. 예수님을 핑계 삼으면서 하나님 신앙을 너무 쉽게 여긴 것이 사실이다. 지금 우리가 회복해야 할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우리가 토라를 염두에 두지 않은 것, 십계명을 가볍게 여긴 것이 그 증거다. 하나님의 말씀엔 분명 그것들을 지켜 행하라고 하셨다. 그것도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해 힘써 지킬 것을 말씀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교회 전통을 앞세우며, 말씀을 외면했다.

이스라엘이 항상 자랑스럽게 여긴 것이 있다. 그게 뭘까? 엄밀하게 따지면 그들에게는 자랑할 것이 없다. 나라도 없이 떠돌던 그들이 굳이 자랑할 것이라곤 떠돌이 생활에 익숙하다는 것뿐이다. 따라서 그들의 자랑거리는 세속적인 것이 아니다. 그들의 자랑은 자신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선택받았다는 것이다. 그 외는 그들이 자랑할 것이 없다.

그러나 그 우월감이 너무 지나치는 바람에 그들은 어디서든지 박해를 받은 사실을 역사는 증언한다.

선민이라는 사실을 자랑하는 것으로 모든 게 끝나는 것일까?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선민에게 더 엄격한 것들을 요구하셨다. 그게 바로 토라요, 십계명이요, 규례와 법도다. 그것들을 지키지 않는 한, 그들이 선민이라는 것을 자랑하는 것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

7장엔 그것을 언급하고 있다. 선민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켜 행하라는 것이다. 특히 11절에는 ‘그런즉 너는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할지니라’ 뭐냐? 말로만 떠들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명령으로 알고, 그가 말씀하시는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하라는 것이다.

이 이상의 해석은 없다. 토라를 잊었던 우리에게 치명적인 말씀이 아닐 수 없다. 토라를 놓친 상태에서 우리가 어찌 구원을 운운하겠느냐. 그 동안의 우리는 자기 확신에 빠져 있었음을 고백하고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토라에 대한 새로운 조명과 함께 그것에 우리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야 할 때가 온 것이다.

※ 다음 포스팅에는 선지서와 복음서에는 바에트하난을 어떻게 해석했는지를 올립니다.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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