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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19 : 1 – 22 : 1, 후카트 Chukat, ‘법의 율례’, 제물과 제사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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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07-06 11:08 댓글0건

본문

1. 민 19장 ‘법의 율례’

제물을 원하시는 하나님

오늘 핵심 단어는 히브리어로 후카트 Chukat 다. 뜻은 ‘율례를’이다. 어떤 율례일까? 바로 여호와께서 명령하시는 하토라(????תּוֹ????ה), 즉 ‘그 법’이다. 율법인 토라의 이름은 다양하다. 계명, 율례, 법도 등이다. 오늘 본문엔 특별히 ‘율례’에 대해서 언급했다. ‘율례’란 계명을 지키게끔 규칙화 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지켜야 할 율례란 무엇일까? 본문에는 ‘제물을 바치는 것’이다. 2절에 따르면 ‘온전하여 흠이 없고 아직 멍에 메지 아니한 붉은 암송아지를 잡으라’는 것이다. 제물로 드려져야 할 이 암송아지의 포인트는 ‘흠이 전혀 없어야 한다’.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왜 항상 제물을 원하시느냐는 것이다. 이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하나님께서 제물을 원하시는 것은 그가 욕심꾸러기거나 사람들을 힘들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사람이 하나님과 가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제물 밖에 없는 까닭이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다. 반면 사람은 죄인이다. 사람들에게 죄가 있는 한,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제물은 바로 그 죄를 없애기 위한 방법’인 것이다. 9절에는 그것을 ‘속죄제’라고 했다.

제물 손질은 누가 할까?

이스라엘 백성이 속죄를 위한 제물을 드리면 그 다음 절차가 있다. 먼저 제물을 손질해야 한다. 제물 손질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3절 이하에는 백성들이 가져온 제물을 제사장 엘르아살에게 주어 손질하게 한다.

덕분에 속죄제는 제사장이 없이는 드릴 수 없다. 물론 속죄제를 드린 제사장조차도 그 제물에서 오는 부정함에서 벗어날 수 없다. 따라서 7절에는 속죄제를 드린 제사장도 자기의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은 후에 진영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요, 심지어 저녁까지 부정이 계속된다는 것이다.

이 의식은 이스라엘 자손만이 아닌 그 중에 거류하는 외인에게까지 영원한 ‘율례로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 율례를 후카트라고 한다.

사람은 깨끗할까 더러울까? 생각하기 나름이다. 인본주의는 사람이 세상의 중심이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지만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식이다. 반면 성경에서 말하는 인간은 부정한 존재다. 그 부정함을 없애지 않는 한, 살아 있어도 죽은 목숨이나 다름이 없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 본문엔 특별히 부정한 사람에 대한 언급이 잦다. 11절 이하에는 시체를 만진 자는 부정하다. 그 부정함은 이레 동안이나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다.

왜 시체를 만지는 것이 부정하고 이레 동안이나 부정해 지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시체는 부정함, 즉 죄의 결과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체와 접촉했다는 것은 곧 부정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죽음은 이 땅에서 사는 생명체라면 반드시 겪어야 할 운명이다. 만약 시체를 만질 수 없다면 어떻게 될까? 짐승의 밥이 되거나 길거리에서 썩어야 할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따라서 본문에는 부정한 자가 정결해 질 수 있는 방법을 일러 놓았다. 12절엔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잿물로 정결하게 하라고 했다.

성경엔 왜 이렇게 부정한 자에 대해서 민감한 것일까? 한 사람의 부정함이 공동체는 물론이요, 나아가 여호와의 성막까지도 더럽힐 수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부정한 자의 처벌은 아주 단호하다. 13절에는 그가 이스라엘에서 끊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잿물은 깨끗한 물, 즉 정수다. 그 물로 셋째 날, 일곱째 날 씻으면 더러운 것이 깨끗해진다.

과연 우리에게 깨끗한 잿물은 무엇일까? 옛날처럼 불 태우고 남은 재에 약수라도 섞어야 할까? 아니다.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삼일, 칠일은 우리에게 상당히 익숙한 숫자다. 예수님의 죽으신 후, 부활 하신 날이 3일이다. 또한 7일은 안식하는 날이다. 결국 우리를 깨끗하게 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다.

2. 민 20장 가데스와 므리바에서의 다툼

원점에 선 이스라엘

고라 일당의 반역은 이스라엘의 행진을 멈추게 했다. 시간이 꽤 지체된 셈이다. 1절에 첫 번째 달에 이스라엘이 가데스에 이르렀다고 했다. 이 첫 째 달이라는 것은 히브리 종교력으로 따져 이스라엘이 출애굽 한 지 정확하게 40년 세월을 말한다.

가데스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떤 의미인지 민13:26절에 잘 나타나 있다. 가데스는 12정탐꾼이 가나안을 정탐했던 장소다. 12 정탐꾼들의 보고는 부정적이었다. 땅은 좋지만 원주민들이 너무 강해서 그 땅을 탈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보고였다. 결국 그들의 부정적 보고에 따른 하나님의 진노로 출애굽의 1세대는 광야에서 다 죽고, 그의 자녀들은 40년을 광야에서 방황하리라는 저주를 받았다. 그리고 지금 가데스에 돌아 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 말씀이 성취된 순간이기도 하다.

한 마디로 이스라엘이 죽을 둥 살 둥, 40년 동안 광야를 헤매고 다녔지만 원점으로 돌아왔다는 셈이다.

빨리 간다고 빨리 도착하는 것이 아니다. 늦었다고 꼭 늦는 것만도 아니다. 그것은 자기 생각이요, 자기 계산이다. 하나님을 의지 않는 빠름은 360도 돌고 돌아 원점으로 돌아오게 할 뿐이다.

이스라엘이 그럼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이 가데스에서 또 다시 다툼이 일어났다. 이번엔 또 무엇 때문에 다툼이 생긴 것일까?

2절엔 다툼의 원인이 물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와 아론에게 불평하는 것은 이전 민수기 16:13-14절에서 했던 패턴과 똑같다. 먼저 출애굽을 원망하는 것이요, 두 번째는 현재 상황을 불평하는 것이다. 즉 먹을 것도, 마실 물도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세의 아론의 반응이다. 이들은 백성들이 불평할 때마다 그들을 떠나 회막 문에서 엎드렸다는 것이요, 그들에게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정신 못 차리는 이스라엘

그런데 이전과 다른 것이 한 가지 있다. 이전 같았으면 하나님께서 분노하셔서 그들을 다 죽이시든지 하실 텐데 이번에는 그게 아니었다는 것이다. 모세와 아론에게 지팡이를 가지고 회중을 모아 그들이 보는 앞에서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는 것이었다.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의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치니 물이 많이 솟아 나와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것이 있다. 그게 뭘까? 이번엔 백성이 아닌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께 욕을 먹었다. 12절엔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한 마디로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8절엔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하라’ 하셨다. 그런데 11절엔 모세가 그의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라고 했다. 무슨 뜻이냐? 하나님께서 시키신 대로 하지 않았다.

모세와 아론, 즉 선지자든 제사장이든 주의 종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액면 그대로 전하는 것이 사명이다. 설교자의 사명은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전하는 것이다.

13절에는 모세가 반석을 쳐서 물을 낸 것을 므리바 물이라고 했다. 므리바란 밑에 주석에 보면 '다툼'이다. 다툼이란 굳이 이스라엘처럼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만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지 않는 모든 불신적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과 다투고 있는지 아닌지를 항상 예민하게 따져야 할 것이다.

에돔의 거절

그럼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대적만 문제가 되는 걸까? 아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종종 사람들이 그러더라. 성경에서 말하는 것들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니, 자신들은 맘대로 해도 괜찮다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지만 아니다. 하나님을 믿든, 믿지 않든 하나님의 말씀 내지 명령은 모두에게 해당하는 것인 까닭이다. 믿는 자와 불신자의 차이는 단지 상황에 따른 즉각적인 처벌이 있느냐 없느냐일 뿐이다.

모세가 가데스에서 에돔 왕에게 사신을 보냈다. 14절 이하엔 그 내용을 기록했다.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이렇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사는 것이 너무 힘들어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출애굽 하셨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구원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가데스에서 그들의 땅으로 지나가도록 길을 터달라는 것이다. 대신 어떤 손해도 끼치지 않겠다는 것을 약속했다.

그러나 에돔 왕은 모세의 부탁을 단번에 거절했다. 만약 지나가려고 했다가는 칼을 들고 대적하겠다는 것이다. 모세가 재차 부탁했지만 에돔 왕의 너무 완강하게 거절했던 지라 결국 이스라엘이 길을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스라엘의 행보가 참으로 힘들고 어렵다. 광야에서 나흘길만 걸으면 도착하는 곳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건만 어찌된 일인지 돌고 돌아 벌써 40년이 흘렀다. 게다가 광야가 그들의 무덤이 된 것이나 다름 없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이스라엘이 가데스를 떠나 호르 산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시기를 아론은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시겠노라고 약속하셨던 땅에는 들어가지 못하리라는 것이다.

왜 그럴까? 므리바 물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까닭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사회에서 제사장이 없으면 살 수 없다. 아니나 다를까? 하나님께서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을 후계자로 삼으라는 것이다.

호르산에 아론과 그의 아들 엘르아살을 데리고 올라가 아론의 옷을 벗겨 그에게 입히라는 것이다. 그리고 아론은 그 산 꼭대기에서 죽었다는 것이다. 온 회중이 아론의 죽은 것을 보고 그를 위하여 30일 동안 애곡했다는 것이다.

결국 오늘 토라 포션에서 말하는 것이 무엇일까? 지난 시간과 다른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이 속죄물로 거룩함을 유지하라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제물을 원하시고, 아론같은 제사장을 세우시는 것은 제사 때문이다. 그들에게 제사는 죄에서 벗어나고, 여호와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까닭이다.

현대 사회에서 제사는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물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희생제사를 드리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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