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한구절로 보는, 짧은 묵상,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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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05-08 16:05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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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 고난에 시달리는 인간의 운명
인생이 고난의 연속이란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생로병사가 좋은 예다. 물론 고통은 이것만이 아니다. 생명이 있는 동안에는 온갖 애환에 시달린다.
인간이 고통스런 존재가 된 것을 성경은 죄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그 결과 남자는 일을 해야 먹고 살수 있고, 여자는 애를 낳고 남자를 사모해야 하는 고통을 주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행복하려면 죄를 극복해야 한다. 죄를 떨쳐 내기 위해 몸부림을 치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칼자루는 조물주에게 있다. 결국 하나님께서 나서지 않는 한 해결 할 수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사람에게 그 방법을 주셨다.
그게 뭘까? 바로 토라 즉 율법이다. 율법은 십계명을 비롯한 사람이 지켜야 할 것과 지키지 않아야 할 것을 규정한 것이다. 지키면 살고 지키지 못하면 죽는다는 논리다.
여기서 한 가지 기억할 것은 율법이 모세 오경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구약성경 곳곳에는 율법을 다양한 용어로 표현하고 있다. 특히 시편 119편에는 율법, 규례, 법도, 계명 이라는 단어를 열거하고 있다. 게다가 이 단어들이 곧 말씀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율법을 따르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율법을 지키기에는 인간은 부패하고 타락한 존재인 까닭이다. 율법, 즉 말씀을 지키자니 포기 할 것이 많고, 그렇다고 지키지 않자니 하나님의 책망과 심판이 두렵다.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드러난 흥망성쇠는 바로 율법 준수에 따른 결과로 밖에 설명이 안된다. 주변국의 침략, 남북의 분열, 앗시리아와 바벨론에 의한 남북의 멸망, 그리고 성전 파괴 등은 율법을 거부한 하나님의 진노다.
무거운 짐 벗고 쉼을 얻어라
율법을 준수하려면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정확하게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은 율법, 즉 토라의 전문가였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가 누구신지 깨닫지 못했다. 토라를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데는 나름 전문가였는지 모르나 그들은 정작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지 못했다는 것이 예수님의 지적이다.
성경을 읽다가 문득 마11:28절에 꽃혔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라는 말씀으로 꼭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어디선가 들었을 법한 유명 구절이다.
이게 무슨 뜻일까? 살다가 지치고, 힘든 사람들, 사업하다가 부도가 나서 파산신청한 사람들, 하는 일이 안돼서 죽고 싶은 사람들일까? 물론 문자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성경 해석은 맥락에 있다.
이 말씀은 율법을 지켜야 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다. 율법 준수가 처음 의도와 달리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무거운 짐이 되고 있다는 뜻이다. 나아가 그것을 벗어나게 할 수 있는 이가 바로 예수 자신이요, 자신이야 말로 율법을 완성하는 구세주라는 사실을 밝히는 것이다.
이 말씀을 제대로 해석하는 유대인이라면 그들은 예수가 구세주요, 그를 영접하는 것이 곧 그들이 그 동안 구약을 지켜 온 목적임을 깨달았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의 말씀을 깨닫지 못했다. 오히려 그의 말이 자신들을 대적하는 정도로만 받아 들였다.
현대 교회에서조차 이 말씀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다. 단지 살다가 지친 사람들이 예수께 나오는 것만으로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다는 식이다.
성경의 모든 말씀을 해석할 때 주의할 것은 성경 속에 등장하는 사람이거나 사건이 아니다. 그 속에서 역사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혹은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에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나의 것으로 적용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 말씀이 내 속에서 살아 역사하게 하려면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말씀을 일대일 대응하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아전인수격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하실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내가 요구하는 것을 채워주고, 나의 집사 역할을 하는 분이 아니다. 그것은 신앙이 아니다.
예수를 영접하는 자는 율법의 무거움이 아닌 자유를 얻는다. 그렇다고 율법을 가볍게 여긴다는 뜻이 아니다. 예수야말로 율법의 완성이라는 뜻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11: 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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